제가 번역한 『선악의 진화 심리학』이 출간되었습니다






프로이트를 번역한 지 11년 만에 나온 저의 두 번째 번역서입니다.

 

『선악의 진화 심리학』, 폴 블룸 지음, 이덕하 옮김, 인벤션, 2015 11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 Paul Bloom, Crown, 2013.

 

이 책의 번역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린 후 1년이나 걸렸네요. 1년 내내 이 번역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일도 조금 했습니다.

 

Just Babies』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http://cafe.naver.com/evopsy2014/240

 

 

 

맹자는 인간에게는 원래 “측은해하는 마음”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졸지에 보게 되면 다들 겁이 나고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은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교를 맺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과 벗들로부터 칭찬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그 아이가 지르는 소리가 역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에서부터 살펴본다면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사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측은해하는 마음은 인()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의 단서다.

(『孟子(), 車柱環 옮김, 明文堂, 265)

 

()”이 영어의 “altruism(이타성, 이타심)”에 대응하고, “의()” “justice(정의)” 또는 “morality(도덕성)”에 대응한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현대식으로 해석하자면, 맹자는 이타성과 도덕성의 상당 부분이 선천적이라고 본 것입니다.

 

 

 

20세기 들어서서 이런 선천론을 거부하고 후천론(백지론, 환경 결정론, 문화 결정론)을 내세우는 조류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후천론자들은 사랑과 질투, 자식 사랑, 우정, 도덕성 등이 학습 또는 사회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선천론자들의 대반격이 시작되어 한 판 전쟁이 일어났으며 지금도 그 전쟁은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진화 심리학(또는 사회생물학)이 있습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사랑과 질투, 자식 사랑, 우정, 도덕성 등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천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 선택을 끌어들여 그런 것들의 진화적 기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발달 심리학자이자 진화 심리학자인 폴 블룸은 도덕성이 선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맹자의 직관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려 합니다. 한편으로는 아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도덕성이 선천적임은 발달 심리학적으로 입증하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선택을 끌어들여 도덕성을 진화 심리학적으로 해명하려고 합니다.

 

저는 아래 문장이 이 책의 핵심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5개월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 아기들은 처벌이 정의로울 때는 처벌하는 이를 선호하기 시작한다(116)

 

생후 8개월 밖에 안 된 아기가 정의로운 처벌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후천론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이루어진 아기 연구에 따르면, 아기는 수학, 물리학, 심리학, 윤리학 등에 대해, 20세기 주류 심리학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갓난아기도 어른들이 예쁘다고 평가하는 사람을 더 오래 쳐다봅니다. 자궁 속에서 예쁜 얼굴이 무엇인지 태교로 배우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따라서 그런 지식이 선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덕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말도 못하는 아기가 도덕적 판단을 어른과 비슷하게 내린다면 선천성을 뒷받침하는 상당히 강력한 증거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폴 블룸의 책은 이미 한국에 두 권 번역되었습니다.

 

『데카르트의 아기: 아기한테 인간의 본성을 묻다』, 폴 블룸 지음, 곽미경 옮김, 소소, 2006.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 인간 행동의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는 쾌락의 심리학』, 폴 블룸 지음, 문희경 옮김, 살림, 2011.

 

 

 

요란한 역자 후기(“한국 번역계에 대한 항의”)를 같이 올립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요란한 역자 후기는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하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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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번역계에 대한 항의

 

 

 

이 번역서 『선악의 진화 심리학』은 한국 번역계를 향해 외치는 항의이자, 도발이다. 그리고 번역 지망생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다.

 

 

 

1. 항의

 

나는 지금까지 번역서 약 50권의 번역을 비판하여 인터넷에 올렸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한국 번역계는 오역 범벅 번역서들이 판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대리 번역으로 나오는 번역서도 많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는데 대학 교수들의 번역에 오역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보아 맞는 말 같다.

 

내가 비판했던 번역서들 중 일부를 살펴보자.

 

『꿈의 해석』 6 : 27(독일어판)에 오역이 20개 이상(김기태 : 106, 김양순 : 68, 김인순 : 21, 서석연 : 77, 장병길 : 79, 조대경 : 25)

박여성 제주대 교수 옮김, 『괴델, 에셔, 바흐』 : 23(영어판)에 오역 76

홍영남 서울대 교수 옮김, 『이기적 유전자』 : 28(한국어판)에 오역 33

김윤택 충북대 교수 옮김,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감수, 『붉은 여왕』 : 19(영어판)에 오역 40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옮김,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 20(한국어판)에 오역 15

안정효 번역문학가 옮김, 『권력』 : 21(영어판)에 오역 29

이창신 전문 번역가 옮김, 『정의란 무엇인가』 : 33(한국어판)에 오역 27

안진환 트랜스쿨 대표 옮김, 『스티브 잡스』 : 10(영어판)에 오역 21

 

책 전체로 환산하면 오역이 수백 개 또는 천 개 이상이나 된다는 얘기다. 오역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며, 내가 번역 비판을 하면서 오류를 범한 적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오역이 너무나, 너무나 많다. 내가 비판한 이후로 적어도 몇 권의 번역이 개선되어 나왔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최재천 교수는 한국 진화 심리학계의 대부로 통한다. 그런 학자가 번역을 감수했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믿고 읽겠지만 『붉은 여왕』은 오역투성이다. 최재천 교수는 도대체 뭘 감수했다는 걸까? 사실 최재천 교수 자신이 번역한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도 양호한 번역과는 거리가 멀다. 홍영남 교수의 전공은 생물학이다. 서울대 교수가 자신의 전공 학문을 다룬 대중서를 이렇게 엉망으로 번역했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래서 대리 번역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오역의 극치를 보여준 『괴델, 에셔, 바흐』에서는 호프스태터가 쓴 <한국어판에 부쳐>이 책의 번역자인 박여성 교수의 여러 해에 걸친 정성스런 번역은 독자들의 부담을 한결 덜어줄 것이며라는 구절을 옮겨 놓았다. 오역의 극치에 뻔뻔함의 극치를 더했으니 금상첨화라고 해야 하나?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번역문학가라는 안정효 교수의 『권력』에도 오역은 넘쳐났다. 이 책만 졸면서 번역한 걸까? 『스티브 잡스』를 엉망으로 번역한 안진환 대표가 운영하는 번역 아카데미 트랜스쿨에서는 도대체 뭘 가르치는 걸까?

 

나는 『선악의 진화 심리학』에서 오역 10개 이하에 도전한다. 오역투성이 번역에 지친 한국 독자들에게 오역이 적은 번역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

 

 

 

2. 도발

 

번역 스타일을원문중심가독성중심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원문중심 번역에서는 원문의 표면적 의미, 이면의 의미, 뉘앙스, 분위기, 문장 구조, 문체, 유머, 이미지, 난이도 등을 최대한 살려서 번역하려 한다. 단 한 단어도 놓치지 않으려 기를 쓰며, 한 문장을 웬만하면 한 문장으로 번역하려 한다. 원문중심 번역과 직역은 동의어가 아니다. 직역은 원문의 표면적 의미와 문장 구조를 충실히 살리는 번역이다. 가독성중심 번역에서는 자연스럽고 읽기 편한 한국어 문장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원문을 어느 정도는 희생한다.

 

원문중심 번역은 읽기에 불편하다. 독자에게 떠 먹여 주는 번역이 아니라 독자에게도 노력을 요구하는 번역이다. 하지만 번역서를 통해 원문을 더 정밀하고, 섬세하고, 풍부하게 음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쪽 스타일에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학술 번역에서는 원문중심 번역의 장점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하며 거의 극단적인 원문중심 번역을 추구한다.

 

많은 번역서를 원문과 대조 검토하면서 한국 번역계가 가독성중심 번역 쪽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에 편하고 문장만 자연스러우면모든 것이 용서되는풍토가 지배하는 것 같다. 『선악의 진화 심리학』을 통해 원문중심 번역이 어떤 것인지 독자들과 번역가들에게 제시하려 한다.

 

몇 년 전에 노승영 번역가와 내가 하나의 원문을 각각 번역하여 인터넷에 올린 적 있으며, 주간경향의 <의역과 축역 사이, ‘번역 대결’>이라는 기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번역 실력 대결로 보고 관전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번역 스타일의 장단점을 공개적으로 비교하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번역 이벤트를 통해 번역에 대한 토론이 활성화되었으면 한다. 『선악의 진화 심리학』의 출판과 동시에 6장 번역문 전체를 내가 운영하는 카페(http://cafe.naver.com/evopsy2014)에 공개하겠다.

 

 

 

3. 조언

 

오역이 많거나 원문을 너무 많이 희생하는 번역에 질린 독자들 중에 번역에 도전하려는 지망생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선악의 진화 심리학』을 그런 사람을 위한 번역 교본으로 제시하려 한다.

 

가독성중심 번역을 추구하더라도 우선 원문중심 번역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독성과 자연스러운 문장을 위해 원문에 있는 어떤 것들이 희생되는지 번역가가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실력도 안 되면서 교본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 건방지다고 핀잔주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것 같다. 나는 내 번역 실력이 대단하다고 떠들어댄 적도 없고, 여전히 전문 번역가라는 명함을 내밀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만큼 원문을 충실히 살리면서 나보다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번역하는 한국 번역가를 아직 못 찾았다. 『선악의 진화 심리학』만큼 엄밀하고 섬세하게 원문을 살리면서 가독성과 자연스러운 문장이라는 측면에서는 더 우월한 번역서가 있다면 꼭 알려주시기 바란다(evopsy2014@naver.com).

(『선악의 진화 심리학』, 290~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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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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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에 대한 엉터리 비판: 029. 여자의 질투를 인정 안한다 진화 심리학에 대한 엉터리 비판

Stephanie A. Shields Pamela Steinke는 사회생물학이 여자의 질투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한다.

 

사회생물학이 남자가 여자의 행동에 일반적으로 질투를 하는 이유에 대한 진화론적 적합도(fitness) 이야기를 정식화하는 일이 종종 있지만, 여자의 질투에 대한 똑 같이 합당한 진화론적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통 알아채지 못하며, 짝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거나 다른 여자를 꼬시려고 할 때 고통을 느낀다고 여자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할 때 그것을 인정하지조차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 보인다.

 

Although sociobiology often formulates an evolutionary fitness account of why men are commonly jealous about female behavior, it usually fails to recognize an equally reasonable evolutionary account for female jealousy, and often seems not even to acknowledge the commonly reported distress among women whose partners are philandering or flirting with other women.

(Does Self-Report Make Sense as an Investigative Method in Evolutionary Psychology?, Stephanie A. Shields and Pamela Steinke, Evolution, Gender, and Rape, Cheryl Brown Travis 편집, 95)

 

 

 

정말 어이가 없다.

 

사회생물학계와 진화 심리학계에서는 보통 결혼이 계약과 비슷하다고 본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궁을 어느 정도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남편은 아내와 아내의 자식에게 이런 저런 자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온갖 진화 심리학 가설들로 이어진다. 자세한 것은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를 참조하라.

 

1. 남자는 예쁜 여자에 엄청나게 집착하는데 임신 능력과 수유 능력이 좋을 것 같은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2. 여자는 능력 있는 남자를 선호하는데 그것은 자원을 더 잘 제공할 만한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돈 많은 남자에 대한 선호로 나타나기도 한다.

 

3. 남자의 질투는 여자의 질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교에 초점을 맞춘다. 그 이유는 여자의 자궁에 대한 독점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여자의 질투는 남자의 질투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그 이유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면 그 여자에게 자원이 샐 수 있기 때문이다.

 

5. 남자는 쉽게 성교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를 배우자로서 선호한다.

 

6. 여자는 자식을 더 잘 돌볼 것 같은 남자를 배우자로서 선호한다.

 

 

 

이런 가설들이 얼마나 잘 입증되었는지에 대해 따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자들이나 진화 심리학자들이 여자의 질투를 무시한다는 비판은 말도 안 된다.

 

Stephanie A. Shields Pamela Steinke가 사회생물학자나 진화 심리학자가 쓴 대중서 몇 권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이런 헛소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진화 심리학에 대한 엉터리 비판: 028. 강간범은 유전적으로 달라야 진화 심리학에 대한 엉터리 비판

Cheryl Brown Travis는 만약 강간이 적응이라면 강간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유전적으로 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만약 강간이 포괄 적합도에 기여하는 특수한 적응이라면 강간을 하는 개인은 강간을 하지 않는 개인과 유전적으로 달라야 하며 강간을 하도록 하는 유전적 성향이 있는 개인이 번식에 더 성공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그 가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다. ThornhillPalmer는 이에 대한 증거를 전혀 대지 않고 있다.

 

Additionally, if rape is a specific adaptation that adds to inclusive fitness, individuals who rape must differ genetically from those who do not rape and there must be differential reproductive success for individuals with a genetic propensity to rape. Both of these are necessary requirements for support of the hypothesis. Thornhill and Palmer provide no evidence on these points.

(Theory and Data on Rape and Evolution, Cheryl Brown Travis, Evolution, Gender, and Rape, Cheryl Brown Travis 편집, 212)

 

 

 

난자를 만들어내는 난소가 적응이라는 점을 부정할 진화 생물학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소가 있는 개체와 난소가 없는 개체는 유전적으로 다른가? 인간의 경우에는 그렇다. 인간의 성별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악어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악어의 성별은 유전자가 아니라 온도에 의해 결정된다.

 

심지어 성전환을 하는 물고기도 있다.

 

부산아쿠아리움은 자이언트그루퍼(Giant Grouper) 새끼 500여 마리를 반입했다. 이 물고기는 자이언트그루퍼는 현재는 몸길이가 15㎝에 불과하지만 최대 230㎝로 자란다. 물고기 중 가장 큰 종이며 특히 성장하면서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전환을 하는 매우 특이한 습성을 갖고 있다.

부산아쿠아리움 성전환 물고기

연합뉴스 | 입력 2010.11.16 16:04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newsview?newsid=20101116160409432

 

 

 

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할 수 있다.

 

1. 인간의 성별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듯이 강간 전략을 쓰는 남자와 강간 전략을 쓰지 않는 남자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또는 강간 모듈이 있는 남자와 강간 모듈이 없는 남자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일부 진화 심리학자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에 대해 이런 식의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사이코패스 유전자”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2. 악어의 성별이 환경에 의해 결정되듯이 환경에 따라 강간 모듈이 생기기도 하고 생기지 않기도 한다. 일부 진화 심리학자는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sociopath)에 대해 이런 식의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모종의 환경이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가 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3. 모든 남자에게 강간 조절 모듈이 있다. 강간 조절 모듈은 이런 저런 입력 값을 받아들여서 강간을 하기로 결정하기도 하고 강간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한다.

 

4. 자이언트그루퍼의 성별이 바뀌듯이 강간 모듈이 생겼다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

 

그리고 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을 제시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은 주로 3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설사 1번이라 하더라도강간 유전자를 품고 있는 남자가 번식에 더 성공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난소가 적응이며 “난소 유전자” 즉 “암컷 유전자”가 있다 하더라도 암컷이 수컷보다 번식에 더 성공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히려 빈도 의존 선택(frequency dependent selection, 비율 의존 선택)에 의해 번식 성공도가 서로 비슷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수컷이 암컷에 비해 번식에 더 성공한다면 수컷의 숫자가 더 많아져서 결국 번식 성공도가 비슷해지는 식이다. 사실 자연계에서 대체로 암컷과 수컷의 숫자가 서로 비슷한 것을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

 

 

 

진화 심리학을 비판하고 싶으면 제발 진화 생물학부터 제대로 공부해라. 쥐뿔도 모르면서 나서지 말고...


진화 심리학에 대한 엉터리 비판: 027. 진화 역사는 못 바꾼다 진화 심리학에 대한 엉터리 비판

Mary P. Koss는 자연 선택이 “고정된 회로”를 만들어낸다는 견해는 운명론 또는 체념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자연 선택이 유연성을 만들어낸다는 견해는 사회악을 예방하는 정책을 제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진화 역사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생물학적 설명만으로는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생물학적 영향이 고정된 회로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구체화되는 잠재적 경로들을 만들어낸다고 본다면 실천적 함의가 있는 연구로 이어질 수 있다. 남자가 본질적으로 탐욕스럽다고 보는 견해는 희망이 없다. 이에 반해 어떻게 모진 환경, 안정된 애착의 결여 또는 사회적 학습이 남자의 난잡한 성행태의 발달을 촉진하는지를 알면 예방책을 제시할 수 있다.

 

Alone, biological explanations will not solve social problems because people cannot change their evolutionary history. However, a conceptualization of biological influences not as hardwiring but as potential pathways that are shaped by the environment can lead to research with practical implications. Viewing men as inherently rapacious is hopeless. On the other hand, knowing how harsh environments, lack of secure attachments, or social learning favor the development of promiscuous male sexuality sets a prevention agenda.

(Evolutionary Models of Why Men Rape: Acknowledging the Complexities, Mary P. Koss, Evolution, Gender, and Rape, Cheryl Brown Travis 편집, 202)

 

 

 

이 말은 강간에 대한 진화 심리학 이론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한 것이다. 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에 따르면 자연 선택에 의해 남자의 강간 조절 기제가 “설계”되었다(강간에 대한 적응 가설의 종류가 여러 가지이기 때문에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이것이 “고정된 회로”에 해당한다.

 

반면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런 선천적 기제는 없다. 강간은 이런 저런 환경적 영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연 선택은 “잠재적 경로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어떤 경로가 실현될지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Koss는 강간 문제와 관련하여 적응 가설이 운명론 또는 체념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남자의 강간 조절 기제가 진화했다면 강간은 인간의 숙명이다.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갈 수 없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논의의 편의상 시각과 피아노 연주를 비교해 보겠다. 뇌 속에 있는 시각 처리 기제의 상당 부분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고정된 회로라는 점을 대다수 심리학자들이 인정한다. 옛날에 더 잘 보았던 조상이 그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 기제가 그렇게 진화한 것이다.

 

반면 피아니스트의 뇌 속에 있는 피아노 연주 기제는 후천적이다. 옛날에 피아노를 더 잘 쳤던 조상이 그 덕분에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피아노 연주 기제가 진화한 것이 아니다. 모종의 학습 기제가 작동하여 피아노 연주 회로가 생성된 것이다. 피아노를 전혀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런 회로가 없다. 피아노가 없는 문화권에는 그런 회로가 있는 사람이 아예 없다. 이것은 시각 회로가 인류 보편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시각 회로가 선천적이라고 해서 시각 회로의 결과가 모두 똑같은가? 아니다. 왜냐하면 시각 회로는 입력 값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입력 값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 옛날에는 비행기가 없었기 때문에 비행기를 볼 수도 없었다. 따라서 시각 회로의 처리 결과 뇌 속에서 “비행기의 상”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진화 심리학자들이 강간 조절 기제에 대한 가설을 세울 때 입력 값이 전혀 없는 기제라고 가정할까? 아니다. 강간 조절 기제가 이런 저런 입력 값들을 받아들여서 강간을 할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본다. 따라서 설사 전투적인(?) 적응 가설대로 강간 조절 회로라는 고정된 회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어 붙박이장처럼 모든 남자의 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강간 예방 정책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강간 조절 기제에 다른 입력 값들이 들어가도록 하면 된다.

 

논의의 편의상 강간 조절 기제에서 “강간을 하다 들키면 얼마나 큰 처벌을 받는가?”를 입력 값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리고 더 큰 처벌을 받을수록 강간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도록 강간 조절 기제가 “설계”되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강간 조절 기제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강간을 줄이려면 처벌을 강화하면 된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리고 Koss의 말대로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진화 역사를 바꿀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가설이 실천적으로 쓸모가 있든 없는 그것은 그 가설이 참인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자신의 소망(“실천적으로 쓸모가 있는 이론이면 좋겠다”)대로 과거에 인간의 진화가 일어났다고 본다면 그것은 대단한 과대망상이다.

 

가설의 참/거짓을 가리기 위해서 따져야 할 것은 논리와 실증이지 Koss의 소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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