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도덕 짧은 글[~2007]

이 글은 『과학적 윤리학』에 포함될 예정입니다. 먼저 『과학적 윤리학』을읽어 보는 것이 이 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서열과 도덕

 

동물에게는 서열(dominance hierarchy, peckingorder)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에게도 서열은 있다. 힘이센 자는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권력은 평등하게 배분되지 않는다.그리고 서열은 도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어떤 침팬지가 바나나를 가지고 있다. 잠시 후 서열이 높은 침팬지가와서 바나나를 빼앗아간다. 이 때 빼앗긴 침팬지는 찍소리도 못한다. 여기에서도덕은 무엇을 의미하나? 서열이 있는 곳에 도덕은 없는 것일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분수를 알라”, “윗사람을 공경하라”라는 말을듣는다. 이것은 규범이며 도덕적 성격을 띤다. 서열이 곧도덕을 자처하는 것이다. 이런 규범을 어겼을 때 윗사람과 관찰자의 도덕적 분노가 따르며 규범을 어긴자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서열과 협동 불평등한 분배

 

우선 혈연 선택이라는 요소는 무시하기로 하자. 친족이 아닌 두 친구가협동해서 바나나를 20 개 땄다고 가정하자. 다른 조건이같다면 10 개씩 나누는 것이 도덕적으로 합당하다. 만약한 명이 12 개를 가지겠다고 우긴다면 상대는 도덕적 분노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조건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 쪽의 서열이 높은수 있다. 이 때에는 서열이 높은 친구가 12 개를 가져가고서열이 낮은 친구가 8 개를 가져가는 식으로 불평등한 배분이 이루어지기 쉽다. 그럼에도 서열이 낮은 친구가 도덕적 분노를 느끼지 않고 서열이 높은 친구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인간의 경우에도 직장 상사가 자신보다 더 많은 월급은 탄다고 해도 부하 직원이 월급 차이 그 자체 때문에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시한다. 다른동물들의 경우에도 그렇다.

 

 

서열과 협동 그래도 도덕은 있다

 

그렇다면 도덕은 평등한 권력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서열은 도덕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인간 사회에는 서열도 있고 도덕도 있다. 그리고 그 도덕은 평등한 관계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불평등한 관계에도 도덕성은 있다. 위의 예에서 강자가 12 : 8 로 나누자고 할 때에는 가만히 있던 약자도 강자가 18 : 2 로나누자고 할 때에는 열받을 것이다. 또한 만약 강자가 20 개를몰래 독차지했을 때에는 강자 자신이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약자는 불평등을 감수하기는 하지만 그 불평등의정도가 어느 정도 이상일 때에는 도덕적 분노를 느낀다. 직장 상사가 자신보다 월급을 어느 정도 더 많이받는 것에는 불만이 없던 사람도 그 차이가 어느 정도 이상이 될 때에는 도덕적 분노를 느낀다.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약자가 10 : 10 으로 나누자고 한다면 강자는 도덕적 분노를 느낄 것이다. 또한약자는 분수를 모르고 행동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만약 자신의 부하 직원과 월급이 같다면 상사는도덕적 분노를 느낄 것이다.

 

 

절대 권력은 없다

 

평등한 동물들 사이에서는 50 : 50 으로 나누는 것이 합당한 결정이며이 비율에서 벗어나면 손해 보는 쪽이 도덕적 분노를 느끼며 이득 보는 쪽이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다면불평등한 동물들 사이에서는 합당한 비율이 어떻게 결정될까? 그리고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도 도덕이 존재할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협동은 보통 같은 종의 동물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 때 두 동물사이에는 힘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약자와 강자가 싸움을 붙는다면 강자가 이길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강자가 100% 이긴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또한 강자가이긴다 하더라도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만약 강자가 12 : 8 의 비율을 제안했을 때 그것에 불만을 품고 맞서 싸운다면 자신이 질 가능성이 크며 강자보다 더 큰부상을 입을 것이다. 따라서 2 개를 포기하는 편이 더 나을것이다. 하지만 18 : 2 의 비율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물론 이길 가능성, 부상 가능성은 똑같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살다가는 굶어죽을 수 있다. 즉 부상의 위험이굶어죽을 위험보다 작은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이 어느 정도 이상이면 강자에게 도전하는 것이 유리하다.

 

강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12 : 8 의 비율을 제안하면 약자가순순히 받아들일 것이다. 반면 18 : 2 의 비율이라면어떨까? 물론 6 개를 더 먹을 수 있으므로 생존과 번식이그만큼 도움이 된다. 하지만 약자가 가만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약자와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하다. 자신이 이길 가능성이 크지만 질 수도 있고 이기더라도 부상을 당할수 있다. 부상의 위험이 6 개를 더 먹음으로써 얻는 이득보다클 수 있는 것이다.

 

편의상 부상의 손해와 음식으로 얻는 이득이 서로 평형을 이루는 것이 13 :7 의 비율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것은 공평한 배분이 된다. 서로 평등한 관계에서는 10 : 10 이 공평한 비율이었으며 이것보다더 먹으면 도덕적 분노의 표적이 된다. 반면 불평등한 관계에서는 13: 7 이 공평한 비율이며 이것보다 더 먹으면 도덕적 분노의 표적이 된다. 만약 약자가 12 : 8 을 제안한다면 “분수를 모른다”는 비난을 받는다. 만약강자가 14 : 6 을 제안하면 “너무하는 것 아냐?”라는비난을 받는다.

 

물론 그 비율은 강자와 약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얼마나 큰가에 달렸다. 만약서열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서로 엇비슷하다면 11 : 9 가 공평한 비율로 인식될 것이다. 만약 힘의 불균형이 매우 심하다면 15 : 5 가 공평한 비율로인식될 것이다.

 

 

집단 선택

 

서열이 있는 집단에서의 도덕을 집단 선택으로 설명하려는 학자도 있다. 강자가약자에게 막 대하면 결국 약자가 너무 약해져서 다른 집단과의 싸움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약자는 강자가 다른 집단과의 싸움에서도 앞장서기 때문에 그에게 양보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런 설명이 George Williams가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에서 비판했던 집단 선택의 오류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든다. 내 느낌을 정교한 수학적 모델로 구체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어쨌든 Williams가 비판했던 많은 사례에서 그랬듯이 이 사례에서도 굳이 집단 선택을들이대지 않고도 서열과 도덕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것은 윤리 현상의 서술(descriptiveethics)이다. 우리가 어떤 윤리를 세워야 하는가(prescriptiveethics)는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서열 간의 불평등을 몽땅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인간이 서열 간의 불평등은 감수하도록(약자가) 그리고 요구하도록(강자가) 설계되었다는점을 밝히는 것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이 왜 마약에 중독되기 쉬운가를 밝히는것이 마약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권위, 서열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는 무정부주의자(anarchist)도 아니다. 한편으로는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이 전문노동자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믿는 못말리는 이상주의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 서열이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고 믿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의 평등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나는 왜 극좌파인가(나는 왜 다윈주의적 극좌파인가)』에서어느 정도 썼으며 앞으로 더 상세히 쓸 생각이다.

 

 

2007-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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