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 007. 자연의 섭리 따위는 무시하고 살자 글쓰기(진화심리)[2011~2012]

어떤 이들은 인공적인 것보다 자연적인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식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런 경향을 보인다. 인공 식품을 만들 때 매우 해로운 화학 물질을 첨가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에서 나온 것들도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자연에는 치명적인 독버섯이나 기생충도 있다.

 

독은 괜히 진화한 것이 아니다. 독은 자신을 죽이려는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때도 있고, 다른 동물을 죽여서 먹기 위한 것일 때도 있다. 독의 진화는 자연계에 충돌과 착취가 존재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생은 착취의 한 방식이다. 구약 성서에서는 신이 인간을 위해 자연을 만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잘 익은 과일처럼 인간에게 유익한 것도 존재하지만 독사처럼 인간에게 해로운 것도 존재한다. 동양 철학에서는 자연의 조화에 대해 떠들지만 자연에는 온갖 종류 끔찍함이 있다.

 

 

 

어떤 이들은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엄청나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 중 무엇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 성교를 하면서 수컷의 머리를 뜯어 먹는 암컷 사마귀를 본받아서 성교를 할 때에는 살인도 해야 한단 말인가? 새로 차지한 무리의 새끼들을 몽땅 죽이는 수컷 사자를 본받아서 남자들은 애가 있는 여자와 결혼을 할 때에는 애를 죽여야 한단 말인가? 자연에서는 중병에 걸리면 곧 죽으니까 인간 사회에서도 병원을 몽땅 없애서 자연적으로 만들어야 한단 말인가? 개미처럼 한 공동체에서 한 명 또는 소수의 여자만 애를 낳고 나머지 여자들은 그 애를 돌보는 일을 해야 한단 말인가? 기생 생물들을 본 받아서 남들에게 기생하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자연에는 조화와 공존도 있지만 충돌과 착취도 있다. 자연에는 미적 아름다움과 도덕적 아름다움도 있지만 미적 추함과 도덕적 추함도 있다. 자연의 섭리 중 하나인 자연 선택에서는 잘 번식하는 자가 성공한다. 때로는 자기 희생, 협동, 보살핌이 번식에 도움이 되지만 때로는 속임수와 착취가 번식에 도움이 된다. 개미 군락의 일개미처럼 극단적인 자기 희생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는 반면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잔인한 속임수와 착취의 사례도 있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는 사람은 성경 말씀을 따르려는 사람만큼이나 혼란에 빠질 것이다. 성경에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도 있지만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남자들을 몽땅 죽이고 여자들을 전리품으로 차지해도 된다는 말도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좋은 말만 인용하면서 자신이 성경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실제로 성경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자신 나름의 가치관을 따르고 있을 뿐이며 거기에 부합하는 성경 구절만 인용하는 것일 뿐이다.

 

어떤 사람이 자연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개미처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어미 침팬지처럼 자식을 정성스럽게 돌보고, 보노보처럼 웬만하면 싸우지 않고, 벌처럼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그 사람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자연에서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것들만 고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자연의 섭리를 따르려고 결심했다면 엄청난 고뇌에 빠질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자연에는 성교 중에 짝을 잡아먹는 사마귀와 새끼들을 죽이는 사자도 있기 때문이다.

 

공학자들은 자연에서 배울 것이 많이 있다. 인간의 눈이나 거미줄처럼 자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구조들이 있다. 하지만 도덕적인 측면에서는 자연은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다.

 

 

 

내가 알기로는 강간의 적응 가설을 보고 자연의 섭리인 강간이 정당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어쨌든 그런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런 사람에게 강간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반박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강간의 적응 가설이 옳다는 것이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된다면 그 때부터는 강간이 정당하다고 이야기할 셈인가? 그런 사람에게는 나는 자연의 섭리 따위는 무시하고 산다라고 대답해 주면 된다.

 

동물 세계가 약육강식의 세계이니까 이런 자연의 섭리를 본받아서 인간 사회도 복지 제도를 없애고 강자독식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자연의 섭리를 언급하면서 강간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는 반면 약육강식의 섭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조금은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신 자식들이 중병에 걸렸을 때에는 병원에 보내지 말고 자연의 섭리대로 죽게 내버려둘 것인가?라고 반문하면 된다.

 

 

 

어떤 이들은 인간은 자신의 본성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웃기는 얘기다. 자연에 사랑도 있지만 투쟁과 착취도 있는 것처럼 인간 본성에도 온갖 측면들이 있다. 사랑, 동정심, 합리성처럼 사람들이 대체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지만, 자기 기만, 이기심과 같이 사람들이 대체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 어떤 진화 심리학자들은 강간 기제나 살인 기제가 진화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강간의 적응 가설에는 남자가 강간 행동을 조절하도록 하는 기제가 진화했다도 있지만, 여자가 강간을 당하면 고통을 느끼도록 하는 기제가 진화했다도 있으며, 인간이 강간이 악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진화했다까지 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옳다는것이 입증되었다고 해 보자. 어떤 섭리를 따라야 한단 말인가? 강간 행동 조절 기제가 있으니까 강간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해야 하나? 강간에 대한 도덕적 평가 기제가 있으니까 강간을 비난해야 하나?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이것을 보통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부른다.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룰 생각이다.

 

「진화 심리학첫걸음마 --- 010. 자연주의적 오류」

 

 

 

덕하

2011-08-18


덧글

  • ㅇㅇㅇㅇㅇ 2012/10/16 07:55 # 삭제

    자연의 섭리가 뭔지를 모르는 전형적인 오류. 귀찮다. 맨날 가르쳐봐도 뭔지 몰라...
  • Apraxia 2012/10/16 09:23 #

    신이든 자연이든 이상적인 이미지의 뭔가를 대상으로 정해서 동경하고픈 심리는 보편적인 거 같아요. 그리고 종종 방해물이 되고...

    속 시원하게 읽고 갑니다.
  • 덕하님께 2012/10/16 11:22 # 삭제

    덕하님 아청법 단속(아청 음란물, 아동포르노, 여성부, 위헌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아크로나 이글루에 포스팅 한번 부탁드립니다. 좀 제데로 한번 다뤄주시면 안될까요? 예전에 덕하님 카페회원이였던 적이 있었는데 카페에서는 그런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다신거 같던데...아크로나 이글루에서 다루기에는 제약이 따르시는건지...
    강간, 도덕적 공리, 자연주의적 오류등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었는데...그런식으로 덕하님께서 이번 아청법과 아동음란물에 대해 포스팅 한번 해주시면 좋겠네요.
  • 이덕하 2012/10/16 13:29 #

    덕하님께 /

    제가 아동 포르노에 대해 글을 쓴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검색해도 안 나옵니다.

    전에 “아동 포르노와 아동 성폭행”에 대한 글을 쓰려고 했던 적은 있는데 별로 그럴 듯한 글이 안 나올 것 같아서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 mogee 2012/10/16 12:28 #

    우와 입이 딱 벌어질만큼 속시원한 글이네요!
  • 이강 2012/10/16 15:35 #

    아 대단히 시원한 글이네요.
    그러나 자연과 의료가 꼭 서로 반하는 의미만 있을까요? 아이를 낳고이있는 암컷의 배를 수컷이 발로 눌러 돕는다던지 아플때 특정풀을 찾아 먹는다던지, 체계적이지 않지만 자연에도 의료행위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주의자에게 병원왜가냐?는 반박은 조금 부족한 논리가 아닌가 조심스레 여쭤봅니다.
  • shaind 2012/10/16 19:51 #

    동양철학의 태두들 중 하나인 노자의 저서(라고 알려진 책)에는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는 어질지 않으니,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취급한다)

    라는 구절이 있죠. 도덕적 권위와 덕성의 이미지를 자연에 투사한 유교식 자연관에 대한 훌륭한 안티테제입니다.
  • 대공 2012/10/16 22:17 #

    강간드립 치려고 했더니 이미 본문에 있네요
  • 뱀  2012/10/21 12:37 #

    하지만 아무리 자연의 섭리를 벗어나려고 애써도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게 또 함정이죠 ㅋㅋ 인간 정신은 뇌의 진화와 떼놓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인위'는 대단히 시건방진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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